남 구하려고 목숨 바쳤는데...까다로운 잣대로 '의로운 죽음' 울린 정부

입력 2022-09-15 14:08   수정 2022-09-15 14:40


2018년 흉기를 든 조현병 환자로부터 간호사들을 보호하려다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 임세원 교수는 의사자(직무 외의 행위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등을 구한 사람)로 선정되기까지 험난한 소송 과정을 거쳐야 했다.

유족은 고인을 의사자로 지정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요청했지만 복지부는 "의사자 요건인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적극적·직접적 행위'를 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불인정 처분을 내려 소송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사망 후 2년이 지난 2020년 법원이 고인을 의사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하고 나서야 그는 의사자로 지정될 수 있었다.

최근 5년간 의사상자 신청 3건 중 1건은 법정심사 기간(최대 90일) 동안 처리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상자를 위한 기념사업 예산의 집행률 역시 최근 5년간 평균 4%에 불과했다. 까다로운 심사 절차로 인해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사망하거나 다친 의사상자들에 대한 지원행정이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15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에서 법정심사 기간을 위반한 심사 건수는 133건 중 39건이었다. 3건 중 1건은 법정심사 기간을 위반한 셈이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7년 47건 중 2건 △2018년 13건 중 3건 △2019년 25건 중 9건 △2020년 21건 중 16건 △2021년 27건 중 9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9~2021년 최근 3년간은 법정심사 기간(60일) 경과 비율이 각각 26%, 76%, 33%에 달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는 청구 후 의사상자 인정 여부를 60일 이내에 결정해야 한다.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때는 최대 3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조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법정심사 기간 경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법정 처리 기간을 경과한 39건 중 최대기간인 90일을 경과한 사례가 17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덕민 한국의사상자협회 이사장은 "의사상자로 선정되려면 직접 각종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해야 하고 이마저도 반려당하기 일쑤"라며 "복지부는 각 지자체에 담당 업무를 넘겼다면서 적극적으로 관련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을 통해 유명해진 의사상자가 아니면 의사상자로 선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의사자를 위한 기념사업 역시 최근 5년간 평균 예산 집행률이 4%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1년 일본 도쿄 지하철 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부산 출신 대학생 고 이수현 씨에 대한 추모식이 일본 현지에서 지금까지도 매년 열리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연도별 집행 현황을 살펴보면 의사자 기념사업 집행률은 △2017년 0% △2018년 0% △2019년 10% △2020년 10% △2021년 0%였다. 2019년과 2020년 각 300만원씩을 제외하면 예산 전액이 불용됐다. 의사자 기념사업 예산은 매년 약 3000만원이다.

5개년 간 의사자 기념사업비 예산 집행계획은 46개소였으며, 같은 기간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실시된 의사자 기념사업은 2건에 그쳤다.

정치권에서도 의사상자에 대한 예우를 위해 관련 법률 개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조명희 의원은 “의사상자와 그 가족에 대한 합당한 예우와 지원이 행정 부실로 늦어져서는 안 된다”며 “보건복지부는 법정처리기간 준수와 기념사업 정상적 시행을 위한 개선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한다”고 밝혔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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